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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 가을 9월 김포(金浦) 가련산(隹連山) 서하공의 잃어버렸던 묘택 과 지석을 찾고 난 뒤의 고유 제문.

 

 금릉산 서쪽에

 높은 산 있는데

 상서로운 기운이 항상 서려있고

 기이한 봉우리들이 모두 조공하는 듯

 빛나도다 신명이시여

 실로 이 땅의 주인이시라

 번쩍번쩍 신령이 내려와

 우리 조상의 좌우에 있네

 우리 조상 서하공께서는

 여기에 옷과 신발을 감추셨네

 묘소의 석물이 언덕에 있었으며

 향기로운 제사가 있었는데

 어찌하여 불행히도

 갑자기 가려졌나

 어떤 자가 비석을 연못에 빠뜨려

 오랫동안 찾기 어려웠어라

 제사가 이미 폐하였으니

 나무꾼과 목동을 누가 금하리오

 가려지고 밝혀짐이 때가 있는지라

 육백년이 지나

 묘역 가운데서

 옛 지석을 얻었으니

 조각돌에 글자가 있는데

 완연히 선조의 휘자로다

 아득하나마 확정함이 있으니

 이는 신의 힘에 의지함이라

 술잔을 높이 올리고

 거친 제물이나마 정성을 다했네

 강산이 바뀌지 않았으니

 길조와 상서로움이 다 이르렀네

 오직 신께서 감동하시고 돌아보사

 바라건대 끝까지 도우소서

 상 향

 

가련산 산소에 다시 지석을 모신 후에 무자년 10월 초 7일에 떼를 다시 입히고 수축하였는데 묘시에 시작하였다. 서쪽을 먼저하였는데 주사는 경진생이다. 북방을 등지고 남방을 향하는 자리이다.

※ 학사공의 종가 종손(承翰) 號는 거문(巨文), 산신제문 지으시고 아우 號는 해사(海史) 승익(承翼)은 제문과 학사공 약사를 기록하셨고 부연하면 학사공 종가의 형제분 중 아우는 당시 통정대부돈령부도정으로 관직에 계시면서 당신이 상소하여 서하공묘소를 어명 판결로 찾으시어 온 집안이 기뻐하여 시향에 참여 묘소를 만은 후 제문 짖고 산신제와 고유제를 성대히 지내시니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각 문중이 시제를 모시게 된 전기가 되었다.

 

산신제문 : 19세손 거문 승한

번  역   : 22세손      문기